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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공연·축제
린 허쉬만 리슨 전시 서울시립미술관 | 나의 [나]들 작품 해설·도슨트·운영시간·무료 관람
2026. 10. 22
피카
TV 속 인물의 다음 행동을 내가 고르고, 그 선택에 따라 결말이 달라진다면 어떨까요?
〈로나〉는 바로 그런 선택을 관람객에게 맡기는 작품이에요.
미국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린 허쉬만 리슨이 1980년대 초에 만들었죠.
작가는 관람객이 이야기에 참여하는 방식을 다른 작품에서도 이어갔어요.
〈딥 컨택트〉에서는 터치스크린 속 인물의 몸을 누르는 위치에 따라 장면이 달라지고, AI 챗봇 〈에이전트 루비〉에서는 관람객의 말에 답하며 표정이 바뀝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린 허쉬만 리슨: 나의 [나]들》은 이런 작업을 포함해 작가의 60여 년 활동을 200여 점으로 보여주는 전시예요.
카메라 눈을 단 인형부터 작가가 직접 기록한 영상 일기까지, 먼저 살펴볼 작품 다섯 점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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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 〈로나〉, 리모컨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결말
〈로나〉의 주인공은 광장공포증 때문에 전화와 TV로만 바깥세상과 연결된 가상 인물이에요.
관람객이 리모컨으로 선택지를 고르면, 36개 장면으로 구성된 이야기가 세 결말 중 하나로 이어집니다.
로나가 로스앤젤레스로 떠나거나, TV를 총으로 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결말이죠.
여기서 리모컨은 이미 정해진 영상을 재생하는 도구에 그치지 않아요.
관람객이 로나의 삶에 개입하는 수단이 됩니다.
다만 모든 행동을 마음대로 정하는 것은 아니에요.
작가가 마련한 갈래 안에서 선택한다는 점에서, 관람객에게 주어진 결정권이 어디까지인지도 생각하게 하죠.
작품 곁의 스토리보드와 흐름도는 그 선택의 범위를 살펴볼 단서예요.
어떤 장면에서 길이 나뉘고, 각각의 선택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눈여겨보세요.
작가는 원하는 장면으로 바로 건너뛸 수 있는 레이저디스크로 이런 구조를 구현했습니다.
이번 전시에는 한글 자막도 더해졌어요.
02
| 〈딥 컨택트〉, 화면 속 몸을 누르면 갈라지는 이야기
〈로나〉가 리모컨을 거쳐 선택하는 작품이라면, 1984년 작 〈딥 컨택트〉는 화면 속 인물의 몸을 직접 누르도록 설계됐어요.
주인공 마리온의 유도에 따라 어느 부위를 누르느냐가 다음 에피소드를 결정합니다.
마리온을 따라가거나 선불교 수행자와 함께하는 이야기 등, 모두 57개 에피소드가 연결돼 있어요.
주목할 부분은 이야기의 수보다 선택지가 놓인 자리예요.
메뉴의 글자나 버튼이 아니라 인물의 몸이 이야기에 들어가는 입구가 됩니다.
화면 속 사람을 바라보던 관람객이 그 몸에 손을 대야 하는 사람으로 바뀌는 거죠.
리모컨으로 선택할 때와 몸을 직접 누를 때, 인물과의 거리감이 어떻게 달라질지 비교해볼 만해요.
이번 전시의 한글 자막에는 1980년대 초기 컴퓨터 화면에 어울리는 서체를 사용했습니다.
03
| 〈사이버로베르타〉, 카메라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인형
〈사이버로베르타〉는 왼쪽 눈에 비디오카메라, 오른쪽 눈에 웹캠을 단 인형이에요.
촬영한 영상을 20초마다 웹사이트에 올리고, 접속한 사람이 인형의 머리를 돌려 보는 방향을 바꿀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이 구조에서 인형은 감상할 대상인 동시에, 다른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됩니다.
인형이 보는 방향을 멀리 있는 접속자가 정한다면, 그 시선은 누구의 것일까요?
카메라가 달렸다는 외형보다 인형의 눈과 접속자의 시선이 연결되는 방식을 살펴보면, 이 작품을 원격으로 확장된 신체로도 읽을 수 있어요.
이름 속 로베르타 역시 작가가 만든 또 다른 정체성이었습니다.
작가는 1970년대에 가상 인물 로베르타 브라이트모어의 이름으로 은행 계좌를 열고 운전면허를 따며 실제 사회에서 활동했어요.
〈페르소나 만들기〉 섹션에 소개된 이 인물과 인형을 함께 보면, 작가가 자신과 분리된 존재를 만드는 방식을 비교할 수 있습니다.
인형의 복제도 이런 맥락에서 볼 만해요.
작가는 복제양 돌리의 탄생에서 영감을 받아, 1995년에 만든 〈틸리, 텔레로보틱 인형〉과 똑같이 프로그래밍한 두 번째 인형으로 〈사이버로베르타〉를 만들었습니다.
04
| 〈전자일기〉, 카메라 앞에서 꺼내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
가상 인물을 내세운 다른 작품들과 달리, 〈전자일기〉에서는 작가가 직접 카메라 앞에 앉습니다.
어린 시절 겪은 학대와 폭력, 몸의 고통과 체중 증가, 그 경험을 견디고 넘어선 과정을 이야기해요.
고백의 내용만큼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가 화면에 나타나는 방식입니다.
감정에 따라 화면이 갈라지거나 일그러지고, 흑백으로 바뀌기도 해요.
1984년부터 이어온 기록은 여러 차례 다시 편집되며 지금의 7편이 됐습니다.
카메라가 한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한다기보다, 촬영하고 다시 보는 과정에서 그 사람의 이야기가 새롭게 구성되는 셈이죠.
세 번째 편에서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와 한 흑인 남성의 이야기가 교차합니다.
이때 화면 속 ‘나’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경험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살펴볼 만해요.
이 편의 제목 「First Person Plural」(1인칭 복수)은 이번 전시의 영어 제목이기도 합니다.
한글 제목 「나의 [나]들」도 프로그래밍의 대괄호를 가져와, 기술 안에서 복제되고 다시 짜이는 여러 ‘나’를 담았어요.
1~6편은 〈스크린, 응답하다〉 섹션에서, 7편은 〈편집된 미래〉 섹션에서 볼 수 있습니다.
05
| 〈에이전트 루비〉, 대화에 따라 표정이 바뀌는 AI 챗봇
〈에이전트 루비〉는 영어로 대화하며 표정까지 바꾸는 웹 기반 인공지능 챗봇이에요.
대화에 따라 눈썹을 찌푸리거나 입을 삐죽이기도 하죠.
작가는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의 의뢰로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이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루비를 볼 때는 답변의 내용과 얼굴의 반응을 함께 눈여겨보세요.
같은 말이라도 표정이 더해지면 퉁명스럽거나 장난스럽게 느껴질 수 있죠.
프로그램의 반응을 어느 순간 한 인물의 태도나 감정으로 받아들이게 되는지, 관람객 자신의 해석도 살펴볼 지점입니다.
루비는 작가의 2002년 영화 〈테크노러스트〉에서 한 여성 과학자가 자기 DNA로 만든 사이보그 복제인간 중 하나이기도 해요.
전시장에 함께 나온 영화 스틸에서는 배우 틸다 스윈튼이 연기한 이 인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지켜보던 인물이 챗봇에서는 말을 주고받는 상대가 된다는 점에서, 두 작품 속 루비를 비교해볼 만해요.
지금의 생성형 AI보다 앞서 만들어진 루비는 영어로만 대화하도록 설계됐고, 이번 전시에서는 한글 자막 창이 더해졌습니다.
| 함께 눈여겨볼 작품 세 점
· 〈롤랜즈/보가트〉(1980~1988): 배우 지나 롤랜즈와 험프리 보가트의 네거티브 필름을 겹쳐 인화하고 그 위에 그림을 더한 〈히어로 샌드위치〉 연작. 두 사람의 얼굴이 한 사람처럼 합쳐져요.
· 〈유혹〉(1985): 여성의 몸에 카메라·TV·쌍안경 이미지를 오려 붙인 〈팬텀 림〉 연작.
· 〈형광 고양이〉(2010~2019): 해파리의 녹색 형광 단백질 유전자를 넣어 빛을 내게 만든 고양이 사례를 보여 주는 작품으로, 마지막 섹션 〈편집된 미래〉에 있어요.
| 관람 시간·도슨트·무료 관람 안내
| 항목 | 안내 |
|---|---|
| 장소 |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3층 전시실, 3층 크리스탈 갤러리 (중구 덕수궁길 61) |
| 기간 | 2026년 10월 21일~2027년 2월 21일 · 월요일·1월 1일 휴관(월요일이 공휴일이면 개관) |
| 시간 | 화~목 10:00~20:00 · 금 10:00~21:00 · 토·일·공휴일 10:00~19:00(10월), 10:00~18:00(11~2월) · 종료 1시간 전 입장 마감 |
| 관람료 | 무료 |
| 도슨트 | 화~일 15:00 |
팝가에서 〈린 허쉬만 리슨: 나의 [나]들〉 자세히 보기
리모컨의 선택부터 챗봇과의 대화까지, 작품에 참여하는 방식이 달라지면 보는 경험도 달라집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완성된 이야기를 감상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관람객이 작품 안에서 어떤 역할을 맡는지 눈여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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